2014/03/31

증산동의 빨간 깃발

얼마 전부터 은평구 증산동 일대에 집집마다 빨간 깃발들이 내걸렸다.
뉴타운 구역으로 지정된 후 10년 이상 전혀 진척이 없어 떠날 사람도 들어올 사람도 움직이지 못하고 고칠 집도 못 고친 채 시간이 멈춘 마을이었다.
박원순 시장이 취임한 후 뉴타운 백지화 계획을 발표한 후에야 망한지 오래인 가게들이 겨우 떠나고 새 가게가 들어서고, 비닐로 창문을 대충 덧대 놓았던 낡은 집이 정식으로 수리를 하기 시작하는 등 마을에 활기가 돌았다.
그러나 뉴타운 백지화는 주민들의 의견 청취를 통해 결정되는 사항이고 찬성파와 반대파가 서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이 지역의 미래는 아직 불투명하다.


거리에 걸린 빨간 깃발은 "재개발 반대"의 목소리다.
몇 개월 전에는 동네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재개발 관련 회의장인지 투표장인지의 앞에서 작은 반대시위를 벌인 일도 있었다.

나는 이 지역 재개발의 이해당사자가 아니지만 근처에 살면서 진행상황을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 발언권이 없는 제3자로서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자면, 나도 재개발을 찬성하긴 어렵다.
대부분의 뉴타운, 재개발 지역들의 선례에서 보듯 그 지역에서 수십년 간 살아온 원주민들을 내쫒고 투기꾼들의 배만 불려줄 가능성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 http://news.tf.co.kr/read/economy/1319304.htm)

이 동네는 전체적으로 낡고 수수한 서민마을이기 때문에 지나가거나 서 있는 고급차나 외제차를 보는 일이 매우 드물다. 간혹 있는 고급차들은 어느 집 차인지 다 기억할 수 있을 정도다.
위에 언급한 지난번 시위현장에서 아주 무례하게, 그리고 불법적으로 시위를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이 동네에 있기엔 너무나 이질적인 번쩍이는 고급차를 타고 고급양복을 입은 아저씨들이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그들은 외지인이다.
때깔 좋고 기름기 흐르는 부자 외지인들이 여기 와서 실제 거주민들이 반대하는 재개발을 격하게 찬성한다? 당연히 투기꾼들이겠지.
그들도 돈이 걸려 있으니 거품을 물고 이 일에 달려들고 있겠지만 남의 집을 빼앗고 남을 불행하게 만드는 일에 양심이 아프지 않다면 그들은 사람으로 대접받을 자격이 없다.

물론 실제 거주민 중에도 찬성파가 있긴 하겠지만, 재개발 분담금을 부담할 수 없는 다수의 이웃들을 마을에서 내쫒고 싶은 그들의 양심도 그리 아름다워 보이진 않는다.
위 기사에 보면 융자로 분담금을 낸 뒤에 아파트를 팔면 차익이 남는다는 달콤한 주장도 있지만 그건 부동산 거품이 꺼지기 전의 얘기고, 집과 마을의 가치를 돈으로만 생각하는 그 가치관도 남에게 권장할 만한 건 아닌 듯 하다.
증산동의 투쟁이 빨간 깃발의 승리로 끝나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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